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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을 위한 기록》

– 감정이 지나간 자리, 시간의 층으로 남다

​서울아트나우 갤러리 | 2025.8.24

성동문화재단 소월전시실에서의 전시에 이어, 서울아트나우 갤러리에서 헝가리 출신 작가 티보르 사이몬 마줄라의 개인전 《사라지는 것을 위한 기록》이 확장 전시로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는 감정이 지나간 자리와 시간의 층위가 회화 안에 어떻게 잔존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마줄라는 반복된 붓질, 지움, 덧씌움의 행위를 통해 사라짐과 기억, 감정의 잔흔을 물질적 감각으로 구축합니다. 이번 서울아트나우 전시에서는 침묵에 잠긴 숲, 고목이 서 있는 공원, 그리고 아내 다이애나를 모티프로 한 신작 회화들이 중심을 이룹니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시간의 결이 중첩된 감각의 지형을 형성합니다. 검은 제소, 손과 붓의 병행 사용, 버려진 팔레트 조각의 재사용은 각 화면을 하나의 기억 구조로 전환시키며, 관람자는 그 물질적 결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내면의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마줄라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남겨지는가’입니다. 한 번 그려지고 다시 덮인 흔적은 또 다른 감각의 바탕이 되어, 화면 위에서 긴 호흡처럼 울립니다. 이 전시는 빠르게 소비되는 시각문화 속에서 사라지는 감정의 밀도와 흔적의 깊이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여정입니다.

 

전시장에는 2024~2025년 사이에 완성된 작품들이 소개되며, 각각의 작업은 단일한 이미지가 아닌, 시간의 층위를 머금은 감정의 단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흐릿하게 스며든 색의 켜들, 덧칠된 붓질 아래 감춰진 장면들은 기억이 도달하는 방식처럼—천천히, 불완전하게, 그러나 분명히—관객에게 다가갑니다.

 

마줄라에게 회화란 외부를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면의 리듬과 정서를 드러내는 언어입니다. 그의 작업은 고요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감각을 되살리고, 감각과 기억을 되묻는 하나의 구조로 작동합니다.

 

이번 서울아트나우 전시에서는 시인 장석의 축시 「화가 마줄라의 작업실」이 함께 소개되며, 회화와 언어의 감각적 접점을 통해 전시의 정조—흐름, 절제, 지속—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합니다.

전시 축시

화가 마줄라의 작업실        장석 시인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다뉴브강을 젖줄로 삼는 화가는
검은 숲으로부터 흘러 와 퇴적되고 흑해로 흘러가며 소멸하는 삶을 그린다

의자가 두 개뿐인 작고 겸손한 방
서로의 강물 같은 잔을 나누며
덧없고 유한한 것들이 쌓이고
소란하게 일던 물결은 거듭거듭 덧칠되어
진실을 말하는 침묵과 영원을 얻은 아름다움이 태어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있다

좁고 어두운 부엌에서 보잘것없는 재료로
생명의 양식을 차리려는 연금술사
그의 아내는 화폭 안에서 늘 걱정 앞에 멈추어 있다

다뉴브강에 핀 연꽃 같은 부다페스트

아름다움의 근원을 알고 싶은 이는
오래된 옛지도를 들고 골목을 뒤지며
그의 화실과 잡목숲과 다이애나를 꼭 찾아 보시길
그 안에 흐르는 강물을 

■ 시인 소개  장석 (1957~,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그을린 고백』 등을 출간했다. 그의 시는 사랑과 삶, 존재의 본질을 불꽃처럼 끌어안으며, “불의 시인”이라 불릴 만큼 강렬하고 고요한 시세계를 펼친다. 2024년에는 일본에서 시선집 『너는 사람의 길을 가지 말아라』가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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